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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자료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가설과 전망 박용민 국립외교원 경력교수 작성일 2022-03-11 조회수 40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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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의 원인에 관한 가설의 타당성
2. 전망과 영향



1. 전쟁의 원인에 관한 가설의 타당성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기존 국제질서에 익숙한 모두에게 당혹감을 안겼다. 전망에 앞서 이 전쟁의 원인에 관한 다양한 가설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나토의 동진에 관하여

먼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이하 나토)의 동진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내재적 분석이 종종 제기된다. 멀리는 2008년 4월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선언문에 “조지아,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염원을 환영하며, 나토의 외무장관들이 다음 순서인 멤버십 행동플랜 적용 시기를 결정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지적된다. 같은 해 8월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함으로써 자국의 입장을 행동으로 드러냈다.
  
이후 나토가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 합동훈련을 벌인 것은 러시아의 경계심을 자극한 대처였다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러시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학계에서 이런 비판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특히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일찍부터 나토의 확장이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다만, 나토의 연합훈련은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과 크림반도 점령이 가져온 반작용이라는 측면도 간과되어서는 곤란하다. 안보 우려가 러시아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조지아 침공 이래 러시아는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아에 사용했던 ‘러시아계 보호’라는 논리를, 마치 수험생이 근의 공식을 사용하듯 반복하고 있다. 러시아계 보호, 반나치 캠페인을 개전 사유(casus belli)로 내세우며 러시아가 이웃나라를 침공한 것은 전쟁권(jus ad bellum)을 충족하는 자위권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마틴 키마니(Martin Kimani) 주유엔 케냐 대사가 2월 21일 안보리에서 행한 연설을 인용하면, “민족, 인종, 종교적 동질성에 기반해 국가를 수립하려 했더라면 지금까지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을” 나라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원인을 ‘나토의 동진’에서 찾는 견해는 마치 제3제국의 생존공간(Lebensraum)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2차대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인과관계를 비튼다. 조지아 사태 이후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서둘렀다는 증거는 없다. 나토 가입을 강하게 주장했던 측은 우크라이나 정부였다.


②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에 관하여

1991년 독립 이래 줄곧 우크라이나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던 문제는 연방 시절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부패였다. 2004년 대선에서 개혁파 빅토르 유센코(Viktor Yushchenko) 후보는 다이옥신을 사용한 암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취임 후에도 반대파와 올리가르히의 반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재임 기간이던 2009년 1월 러시아는 천연가스 협상의 실패를 선언하며 한겨울에 가스 공급을 끊었다.
  
뒤이어 당선된 친러파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은 러시아 흑해 함대에 세바스토폴 군항 임대를 중단키로 했던 전 정부의 결정을 번복했다. 2013년 말 그가 예정되어 있던 EU와의 협력협정 서명까지 취소하자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로 정권을 교체시킨 것이 유로마이단 혁명이었다. 야누코비치는 모스크바로 망명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국론은 친서방 서부와 친러 동부의 극심한 분열을 노정했다. 우크라이나의 내부적 갈등이 국가 분열을 가속화하고 인근 강대국에 개입의 빌미를 준 경위는 강대국에 접경한 모든 국가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은 우크라이나의 반러 정서를 격화시켰다.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정부가 나토 가입을 강하게 요구해온 배경이다. 러시아가 이를 빌미로 침공했으므로, 우크라이나의 안보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나토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 우려에 타당성이 있다면, 최소한 그만큼의 타당성은 우크라이나의 대러 안보 우려에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과도한 우려는 스스로를 실현하는 경향이 있다.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함으로써, 러시아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러시아에 강한 반감을 가진 국민을 이웃으로 두게 되었다. 


➂ 미국의 대응에 관하여

2월 16일을 러시아의 침공 일자로 제시하면서 군사 정보를 공개한 바이든(Joseph Biden) 행정부의 유례없는 전쟁위기 주장이 러시아와의 외교적 해결 공간을 축소했다는 견해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첩보 자산 노출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군의 동향을 상세히 공개한 것은 2021년 아프간 철수 당시 군사 정보 및 상황 판단에 관한 비난을 상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022년 2월 상순 시점에 밖으로 드러난 모습만 본다면 미국은 필요 이상으로 전쟁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인상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침공 의도가 없고 훈련 목적으로 군대를 이동한다던 러시아가 침공을 개시한 이상 미국 측 첩보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2021년 12월 17일 러시아의 라브로프(Sergey Lavrov)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나토의 확장 중단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를 서방 측이 문서로 확약할 것을 요구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평가하듯이, 이것은 서방이 응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상대가 응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는 사실보다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런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외교적 협상은, 이보다 훨씬 덜 민감한 주제를 두고서도, 공개적으로 언론 지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이날 이후 통상적 의미의 외교적 협상 공간은 사실상 사라졌던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2022년 2월 7일 프랑스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을 만나 막판 중재를 시도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고 그것을 상호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결과가 말해주듯, 그것은 유효성을 발휘할 수 없는 제안이 되고 말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건에 기초해 판단한다면, 이 시점에 이미 러시아는 행동 방침을 정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극동지역 군사력까지 포함해 러시아의 거의 전 병력을 국경지대에 집결시킨 점, 침공의 시점을 베이징 올림픽 폐막과 맞물리게 설정한 점 등은 침공의 우발성을 배제하는 요소들이다.


➃ 미·러 간의 “신냉전”에 관하여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러시아의 슬라브적 질서가 우크라이나를 경계로 강대강 충돌을 일으킨 현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중심으로 형성한 질서가 냉전이라는 특정한 맥락에 대응하려는 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질서는 냉전이 종식된 이후 사실상 그 본래적 용도를 다했고, 질서의 과실(dividend) 가운데 미국이 가져가는 몫도 갈수록 작아졌다.
  
더구나 질서의 과실을 갈수록 더 많이 취하는 중국이 미국의 다음번 경쟁 대상이라는 점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때마침 셰일 혁명은 국제적 공약을 유지해야 할 미국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9/11 사건 이후 일시적으로(대략 아프간 철군까지의 20년 동안) 미국은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새로운 적을 향해 힘을 투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미국으로서는 전후 국제질서를 유지해야 할 동기가 냉전시대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미국의 고립주의적 면모는 적어도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 시절부터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강대국들이 현상을 변경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은 힘, 과거의 패전국들이 재무장하지 못하도록 막은 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유럽을 평화롭게 연합시킨 힘, 핵무기의 확산을 막은 힘은 하나의 힘이고, 그 힘의 다른 이름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다. 우리가 오늘날 유럽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질서 대 질서의 충돌이 아니라 기존 질서의 쇠퇴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새로운 냉전의 출범이 아니라, 질서의 쇠퇴에 따른 지정학적 대결의 재연이다.
  
질서가 쇠퇴하는 원인이 헤게모니로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약해졌기 때문인지 도전세력의 현상변경 시도가 강해졌기 때문인지를 논하는 것은 언뜻 보기보다 무용하다. 하산 길이 가파른 것이 봉우리가 높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계곡이 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현상변경 세력이 언제나 도전의 기회를 노리고 현상유지의 힘은 의지와 실익이 미치는 범위까지만 작동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변치 않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의 철권통치를 반대하는 시리아 인민의 항거와 그들이 오늘까지 겪고 있는 비극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이제 막 경험하기 시작한 비극에 결코 덜하지 않다. 국제사회는 시리아 정부의 비인도적 공격에 분노했고, 슬퍼했으나, 좌절했고, 무력감을 느꼈으며, 결국 피로감은 망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사드 정권을 옹호해온 푸틴 대통령은 이와 같은 전개를 경험하며 국제적 개입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러시아가 체첸 전사에 이어 조만간 시리아 정부군도 우크라이나에 투입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민간인 거주 지역에 열압탄과 집속탄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홉스적인 지정학적 투쟁의 계절임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선언적으로 예고한다.


2. 전망과 영향

①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

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한 것은 지키거나 얻으려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설령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에만 군사력을 전개했다 하더라도, 전투가 벌어지는 한 서방의 제재는 있었을 것이다. 작전지역을 돈바스에만 한정했다면 노드스트림의 불승인이나 SWIFT 결재 중단과 같은 강한 제재가 시행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지만, 침공을 강행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제재가 불가능하다고 확신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보는 것 역시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그런 대가를 치르고라도 확보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스크바로부터 우크라이나와의 국경까지 거리는 500km가 채 되지 않는다. 전쟁을 할 때와 안 할 때의 비용을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전쟁 비용이 크지만, 지금 행동하는 비용과 국경 인근 도시 하르키우에 나토의 미사일이 배치되고 나서 행동할 비용을 비교한다면 셈법은 달라진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친서방 의지를 완전히 꺾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 좀 더 세세한 목표도 발견할 수 있다. 크림반도에는 자체 수원이 없다. 드니프로 강 하구 헤르손 지역에 1957년에 건설된 북부 크림 운하가 크림반도의 급수원이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운하를 댐으로 봉쇄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육로를 통해 자동차로 물을 공급해 왔다. 해마다 20~30억 루블의 재정이 소요되는 이 급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의 도시들은 상시 물 부족으로 물 배급제를 실시해 왔다. 러시아가 헤르손 지역을 공격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운하의 댐을 파괴한 것이었다.

합리적인 사람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상대도 합리적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전쟁과 관련하여 대외적으로 발신하는 내용을 스스로 믿고 있다면, 그의 합리는 어쩌면 다른 시대의 합리일지도 모른다. 그의 언어는 동시대의 다른 나라 지도자들보다는 19세기 초에 러시아를 통치했던 알렉산드르 1세를 떠올리게 한다. 비엔나 회의는 나폴레옹이 헝클어버린 유럽의 질서를 정교한 외교적 조치를 통해 힘의 균형을 형성함으로써 복원하려는 노력이었다. 신비주의적 열정을 지닌 알렉산드르 1세는 현실에 발을 딛고 문제를 해결하려던 다른 지도자들을 여러모로 곤경에 빠뜨렸다.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와 탈레랑의 인물평을 기초로, 헨리 키신저는 알렉산드르 1세를 이렇게 평했다. “신비하면서도 교활하고 이상주의적인 동시에 계산적이기도 했던 차르는 러시아의 승리를 구체적으로 정당화할 보편적인 원칙과 소인배들이 이기적이라고 여길 법한 열망을 떠받드는 고귀한 동기가 혼재하는 모순적 감정의 인간이었다. 그는 위대한 자기희생을 할 능력이 있었고, 신성동맹 기간에 여러 차례 그런 능력을 증명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잔인하고 믿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동기와 셈법을 짐작하기가 어려운 만큼이나, 이번 전쟁의 결말을 예상하기도 어렵다.

전황이 악화되더라도, 나토의 지상군이 우크라이나로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토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거나 전투기를 제공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SWIFT 제재에 이어 미국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까지 발표한 이상, 대러 제재 수단의 목록은 빠르게 소진되어가고 있다. 창의적인 추가 제재 방안이 제시되거나 천재지변이 없는 한, 우리는 작동하기 시작한 경제 제재가 힘을 발휘하기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 측도 러시아 측도 패배하는 모양새로 이 전쟁을 종결시킬 수는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상태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변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언제까지 저항할 수 있느냐와 ▲러시아 정부와 국민이 제재를 얼마만큼 견뎌낼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제약조건들과 변수들의 교호작용이 빠르게 작용한다면 러시아는 수 주 내로 키이우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가입 약속과 돈바스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형태로 전쟁을 마무리할 가능성도 기대해 볼 수 있다.(키이우 마이너스 알파 시나리오) 그러나 국제사회는 전쟁이 수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희생자가 속출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판단한다면 여타 접경지역에 대한 모험적 실지회복주의(irridentism)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우크라이나 플러스 알파 시나리오)


② 함의

이번 전쟁은 아시아에서 현상 변경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에 복합적인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서는 ▲서방의 파병은 동맹국에 한정되고 있다는 점, ▲서방의 제재 양태에 비추어, 쌍순환 전략과 인터넷망 분리는 유용한 선택이었다는 점, ▲국가 주권과 영토적 일체성을 최우선적 입장으로 주장해 왔으므로 러시아를 명시적으로 지지하기 어렵다는 점, ▲민족적, 역사적 연고에 바탕을 둔 러시아의 실지회복 주장은 영토 내 소수민족과 관련해서는 난처하지만 양안관계나 남중국해에서는 모방할 여지도 있다는 점,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이번 전쟁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 네트워크의 경도를 시험할 기회가 된다는 점 등에 착목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도 있다. ▲우리 또한 지정학적 단층선 위에 위치한 국가로서 상황 전개에 따라 예민하고 신속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분단으로 귀결되는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환영하지 않는 입장에 서야 할 것이고, ▲수출주도형의 우리 경제가 의존해 온 글로벌 가치사슬이 와해되고 있으므로 체제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군과의 공급망/판매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한미동맹의 신뢰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금번 전쟁에서 핵무기의 필요성을 한층 더 확신할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전략을 새롭게 정비해야 할 것이다.
  
과거 어느 시기보다 ‘전략적 모호성’의 위험성이 큰 시대가 되었다. 모든 사안에 대한 우리 입장은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헌법 정신을 바탕으로 수립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국방비 증액이 예고하듯, 일본의 이른바 ‘정상 국가화’ 움직임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한 변화가 우리와 무관한 맥락 속에서 진행되지 않도록,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통해 양국 간 협력의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이번 전쟁은 시사한다. 구한말의 경험이 우리에게 뼈아프게 증명했듯이, 질서가 쇠퇴하는 지정학적 경쟁의 시대에 주요 강대국들에 대해 기회주의적으로 무원칙한 헤징을 시도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 붙임 참조
#신냉전 #국제질서 #나토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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